
6월이 다가오고 있고, 여름이다
매번 겨울이 오면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죽고만 싶었는데,
여름이 오면 그런 마음도 차츰 잦아든다
그러나 스물일곱을 맞은 올해의 여름은 작년의 여름보다 좀 더 뜻깊다
항상 모든 것을 꽉 쥐려고 애쓰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던 내가 마침내 놓아주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놓는다는 게 뭘까
늘 고민했지만 작년까지도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
더는 못하겠다고 죽자고 그 난리를 치고 공들여 쌓아올렸던 것들이 다 무너진 지금 그 말을 이해하고 있다
모든 것이 망가져야 이해할 수 있는 역설
..
23년도 겨울부터 올해 4월까지는 끊임없이 죽고만 싶었다
내 문제가 아닌 일들로 자꾸만 망가지는 나의 하루가 유난히 더 크게 느껴졌던 기간이었다
이젠 상관없다
괜찮지는 않다
쌓아올린 것들이 무너지는 일은 늘 괴롭기 때문에 괜찮다는 표현을 쓰긴 어렵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그런 일이 생기고 나면 그저 죽고만 싶었는데 .. 이젠 그렇지 않다
정말 상관없다
내가 마침내 이 감정을 깨닫기 위해 그 모든 일들을 겪었던 걸까? 라고 생각하면,
내게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내가 깨달아야만 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
*
여러 번의 자살시도와 나의 우울
그럼에도 죽지 못했고 여전히 우울하다
그럼에도
내가 겪었던 일들과 내 안에 존재하는 단어들을 밖으로 발설하지 않는 이상, 남들이 보기에 나는 아무 일도 없던 사람과 같다
새삼
생각보다 세상은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나를 억압하던 그 모든 시스템들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태초에 인간들은 모두 홀로 태어났다
그리고 홀로 생활했다
인간이 점점 무리를 이루고 부족생활을 하고 마침내 사회라는 것을 구축하게 된 이유는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회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하고 좀 더 편리한 삶을 살기 위해 서로의 계약 속에서 의도적으로 완성된 곳이라는 의미다
반대로 생각하면 .. 이 사회라는 시스템을 벗어나는 순간 너나 나나 다 똑같이 껍데기밖에 없는 좆밥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오롯이 나로 살아가기 위해 늘 생각하고, 사유해야 한다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생 울타리라는 가족이, 내가 종속된 이 사회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사회 안에서 발생된 규범이나 만들어진 가치 안에서 홀로 울었던 날들이 훨씬 많다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외롭고 슬프기만 했던 때도 있었다
이젠 그렇지 않다
그 모든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의미를 가지고 있던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보인다
*
어릴 때 집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어 학교 운동장이나 아파트 놀이터 미끄럼틀에 가만히 누워있곤 했다
처음엔 그게 너무 서럽고 겁이 나서 많이 울었는데,
반복되니 무뎌졌다
날이 좋은 여름날 밤에는 미끄럼틀에 가만히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기도 했다
종종 그곳이 나의 집 같기도 했다
작년 겨울부터 올해 초까지 바닷가 근처에서 내 강아지 인형과 담요만 가지고 한 달 좀 넘게 지냈다
그 바닷가는 밤이면 아주 고요했다
모래사장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오직 세상에 나와 파도만 존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조금 두꺼운 침낭만 하나 있다면 영원히 그곳에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휴대폰은 방해금지 모드로 설정해둔 덕분에 연락을 받을 일도 없었고 .. 내가 그곳에서 뭘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해야만 하는 일과 내가 종속된 사회 안에서 영영 벗어난 느낌이었다
그게 좋았다
남들이 정해둔, 남들이 원하는 내가 될 필요 없이 오롯이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던 시간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내 피부에 닿고, 파도소리가 들리고,
누워있으면 또렷하게 보이는 별들과
내 코끝을 스치던 짠내
움츠러들고 우울하던 그 계절에도 최대치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https://youtu.be/NbKH4iZqq1Y?feature=shared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듣기도 했다
겨울 바다와 어울리는 그 노래를 이때 처음 들었다
..
언젠가 정말로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휴대폰을 충전할 수 없겠지?
그럼 그때 이 노래를 다시 듣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노래를 외웠다
가사를 잘 외우지 않던 나지만, 나중에 그 노래가 듣고 싶을 때 완벽히 떠올리기 위해선 가사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
여전히 나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새삼
집이라는 게, 돌아갈 곳이 나한테는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자유롭게 어디든 떠돌고 아무런 의미 없이 감각하는 순간들이 나와 더 잘 맞았다
*
1999년 3월 14일 14시 30분
그 시각에 태어난 이후 가지게 된 고유명사가 곧 이 사회에서 나를 정의하는 단어였다
집을 나온 이후 개명을 했다
내 의지로 지어진 이름이 아닌 단어가 자꾸만 나로 불리는 것이 싫었다
난 이미 그곳을 나왔는데 나를 자꾸만 그 안에 가두는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온 이후 개명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래선 이름을 바꾼 의미가 있나?
..
하지만 다시 개명을 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다시 명명되는 순간 내가 정한 나의 고유명사는 다시 나를 종속할 테다
언젠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여러 번 얘기했던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된다면
그에게만 나의 비밀스러운 이름을 알려줄 생각이다
*
나는 늘 내가 태어난 날을 근거로 내 스스로를
세기말 스윗걸 .. 이라고 말했다
태어난 요일까지 일요일이니, 여느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선데이)처럼 태생이 달콤한 사람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자주 떠들었다
그리고 올해 1월 1일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관습처럼 이어지는 새해 첫 곡 듣기
나는 ‘환생’을 들었다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는 게 아예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작년과는 다른 내가 됐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음악을 꼽으라고 할 때 얘기할 음악이 달라졌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https://youtu.be/Vy_HeH-pRfI?feature=shared
Wanderer Fantasy
작곡가의 스토리는 제외하고 오직 제목과 멜로디만 나에게로 가져오겠다
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도 괜찮다
여기서 더 바닥을 쳐도 상관없다
내가 속해있는 곳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며, 어디서든 살아남을 테다
*
나의 사랑하는 소녀들과
곧 사랑하게 될 우즈 군에게
6월의 시집으로
성동혁 시인의 6을 추천한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618354
6 | 성동혁 - 교보문고
6 | ‘투명한 서정’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시적 힘과 매혹『6』. 「쌍둥이」로 시작해 「쌍둥이」로 끝나는 이번 시집은 4부, 총 67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쌍둥이」와 「6」처럼 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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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큰 병을 앓았다고 한다
희귀하고 살 확률이 낮은 병이라 .. 여러 번의 대수술을 했다고 한다
이 시집의 제목 ‘6’은 시인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인 여섯 번째 대수술을 앞두고, 쓴 시를 제목으로 완성된 시집이다
시집 디자인을 비롯하여 수록된 대부분의 시가 시인의 자서전과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 .. 라고 예고 다닐 때 시 수업시간에 들었는데 이 부분은 기억이 좀 휘발돼서 오류가 약간 있을 수도 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쓰여진 6
그러나 시인은 살아남았다
시집 역시 세상에 나왔다
여러 번의 고비를 겪고 마침내 살아남은 시인처럼
지나온 날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도 견고히 살아남길 바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추천한다
올해의 6월
여섯 번째 일들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여섯 번째를 지나 일곱 번째에 발 딛을 것이며,
이미 태어난 우리가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하던 7월이 돌아오는 날엔
반드시 빛으로 가득한 세상일 것이다
더불어,
시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주고 싶었다던 시인의 시
‘리시안셔스‘의 꽃말처럼
우리는 ’변치 않는 사랑‘ 안에서 더욱 견고해질 예정이다
*
우리는 지금부터 파도가 될 준비를 하는 물이다
물이 되면서부터 우리는 어디라도 흘러갈 것이고 어디서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 테다
명명되지 않고서도 늘 탄생을 반복할 것이며
영원히 살아남을 테다
마침내
우리는 거대한 파도가 될 예정이다
마을을 불태우는 자와 검게 그리고 빨갛게 타들어가는 세계를 향해 크게 밀려들 것이다
우리는 파도다
그러나 비가 되기도 하고 구름이 되기도 할 예정이다
*
나는 이제 더이상 살아가는 것이 무섭고 두렵지 않다
벗어나는 순간 나에게는 오직 시행착오뿐이다
의미 없는 숫자와 글자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오직 발 딛고 있는 이 땅 위에 태초부터 있던 것만이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
세계를 초월하는 순간
나를 죽일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
마지막으로
나의 사랑하는 소녀들에게 ..
비록 우리 몸은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마음만큼은 언제나 가까이 있지
평행선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성질을 가졌다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 늘 같은 방향으로만 갈 수밖에 없기도 하지
나는 우리 관계가 평행선에 가깝다고 생각해
우리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멀어져도 가끔 소식이 들리지 않아도,
우리 언제나 같은 곳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단 걸 늘 알고 있잖아
이제 우린 말 없이도 서로가 너무 사랑한다는 걸 모를 수가 없지
영원히 같은 방향으로 걸을 테니까
늘 기쁜 일만 벌어지고 기대하는 일들이 반드시 벌어지는 세상은 아니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어
꿈꾸는 이상 언젠가는 꼭 이뤄질 거야
슬프고 힘든 감정은 참을 수 없지만 .. 겁을 먹거나 기죽지는 마
우리는 이 세계 안에서 반드시 이뤄질 꿈을 상상하며
어디든 흘러갈 수 있으니까
눈을 떠도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꿈
다른 누구에겐 몰라도 우리는 영영 잊지 못할 사랑
*
빛으로 가득 찰 7월에 다시 만나요
앙뇽앙뇽
✨
+)
올해는 시를 쓰고 인체 크로키를 하며 한 해를 보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